2025년 6월 1일을 잊을 수가 없다.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일요일 밤 11시 20분. 마포자원회수시설, 이른바 마포소각장 입구에 주민들이 모였다. 마포소각장추가백지화투쟁본부가 주최한 ‘마포소각장 협약 일방체결 서울시 규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시가 주민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은 채 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문제 제기였다. 상암동 주민들에게 소각장 문제는 단순한 시설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생활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정작 자신들의 의견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결정되고 있다는 문제였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지역 정치인들의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민들에게는 절박한 문제였지만, 정치의 시간표는 주민들의 시간표와 달랐던 것일까.
끝나지 않는 싸움
그날 이후에도 소각장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국민의힘 마포을 당협위원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과 주민들은 200여 일 넘는 기간 동안 현장을 지키며 추가 소각장 설치 반대 운동을 이어갔다. 집회와 기자회견, 법적 대응이 계속됐다.
서울시는 2022년 8월 상암동에 하루 1,000t 규모의 신규 광역자원회수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은 입지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1월 10일 1심에 이어 2026년 2월 12일 항소심에서도 주민들이 승소했다. 법원은 입지선정위원회 구성과 전문연구기관 선정 과정의 절차적 하자를 인정했다.
서울시는 결국 상고를 포기했고, 3월 3일 신규 소각장 설치계획을 철회했다. 주민들이 오랜 싸움 끝에 거둔 성과였다.
하지만 승소가 곧 안심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신규 소각장 설치계획이 철회되더라도 기존 시설의 운영과 현대화, 쓰레기 반입량을 둘러싼 문제는 남아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2025년 5월 마포구를 제외한 종로·중구·용산·서대문구와 마포자원회수시설 공동이용 협약을 변경했다. 기존 협약의 사용기간을 ‘시설 사용 개시일부터 20년’에서 ‘시설 폐쇄 시까지’로 바꾸는 내용이었다.
마포구는 협약 당사자인 마포구를 배제한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서울시는 마포구에 협의를 요청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쳤으며, 협약 변경은 마포구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합의 사항이 아니라 협의 사항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양측의 주장은 달랐다. 그러나 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주요 환경시설을 둘러싼 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과 참여가 보장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승소했지만, 불안은 남았다
올해 지방선거 이후에도 주민들은 소각장과 관련한 구청장의 발언을 살펴야 했다. 신규 소각장 설치계획이 철회됐다고 해서 모든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10월 23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의 유죄 판단이 뒤집힌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은 소각장 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별개의 재판이다.
그럼에도 상암동 주민들이 서울시의 향후 정책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날개를 단 서울시장은 소각장문제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민들이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또 다른 문제가 등장했다. 노을공원에 삼풍백화점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조형물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추모의 뜻과 장소의 문제는 다르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1995년 6월 29일 발생했다. 많은 생명이 희생됐고, 아직도 가족을 찾지 못한 유가족들의 아픔이 남아 있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참사의 교훈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함께해야 할 일이다.
노을공원에 추모공간을 마련하려는 데에도 사연이 있다. 당시 붕괴 건물의 잔해 상당량이 난지도에 옮겨졌고, 유해를 온전히 수습하지 못한 유가족들은 오랫동안 이곳에 추모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서울시는 이러한 요청을 반영해 추모조형물 설치를 추진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순히 주민들이 추모시설을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유가족들의 바람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공공의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장소 선정과 추진 과정에 대한 질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2026년 9월 15일 노을공원에 추모조형물을 설치하는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사 현장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장소에 추모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고,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공원인 만큼 충분한 설명과 의견수렴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서울시는 유가족들의 오랜 요청을 반영한 사업이며 주민들과 소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9월 22일에는 노을공원 추모공간 설치계획이 보류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사안의 핵심은 추모냐 반대냐의 선택이 아니다. 추모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장소의 적절성, 주민의 의견,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함께 살필 수 있느냐는 문제다.
상암동 주민들이 질문한다고 해서 그 뜻을 추모에 대한 반대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주민들의 우려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의 오랜 바람 역시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양쪽의 목소리를 듣고 대안을 검토하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다.
주민에게도 평범한 일상이 필요하다
소각장 문제로 오랜 시간을 싸운 주민들은 이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법원을 찾고, 자료를 확인하고, 집회에 참석하고, 행정기관에 의견을 전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큰 부담이다.
그런데 지역 발전을 위한 시설과 생활 인프라의 개선은 더디게 느껴지는 반면, 주민들이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공공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반복된다면 주민들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공공시설은 필요할 수 있다. 서울시 전체의 폐기물 처리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필요성이 특정 지역 주민에게 부담을 집중시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서울시는 공공의 이익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 주민들은 그 설명을 듣고 질문할 권리가 있다. 행정은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의견을 검토했고, 무엇을 반영했으며, 반영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상암동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모든 공공시설을 거부하는 특권이 아니다.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면 다른 지역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내고,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암동에 산다는 이유로 소각장 문제를 감당하고, 소송을 준비하고, 또 다른 공공사업의 추진 과정을 살펴야 한다면 주민들의 일상은 언제쯤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저 다른 지역 주민들과 다르지 않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권리을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