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 "플라스틱병을 더 잘 재활용하는 것보다 재사용 가능한 병을 지켜야"
유럽연합(EU)의 포장재·포장폐기물 규정(PPWR)이 오는 8월부터 본격 적용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재활용 중심의 음료용기 정책을 재사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국내 음료용기 재사용 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는 재사용 가능한 유리병이 페트병과 캔 등 일회용 포장재에 밀려나는 현실을 지적하며 제도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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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국내 음료용기 자원순환 제도 현황과 과제" 김경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
김경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금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플라스틱병을 더 잘 재활용하는 제도가 아니라 재사용 가능한 병이 플라스틱병으로 대체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회수율은 높지만 재사용 병은 줄어드는 역설
현재 국내 음료용기 정책은 빈용기보증금제도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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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국내 음료용기 자원순환 제도 현황과 과제" 김경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
빈용기보증금제도는 회수된 유리병을 세척해 다시 사용하는 재사용 제도이며, EPR은 페트병·캔 등의 회수와 재활용을 생산자에게 의무화한 제도다.
문제는 시장의 흐름이다.
국회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빈용기 출고량은 2003년 56억 병에서 2023년 41억 병으로 26% 감소했다. 반면 EPR 대상 포장재는 같은 기간 100만 톤에서 185만 톤으로 증가했고, 특히 음료용 페트병은 11만 톤에서 35만 톤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빈병 회수율은 99%에 가까운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재사용 가능한 병 자체는 시장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김 조사관은 "회수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재사용 가능한 빈용기 자체가 시장에서 줄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쁜 병' 경쟁이 만든 비공동반환주병 논란
최근 환경단체와 자원순환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문제는 비공동반환주병 증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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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국내 음료용기 자원순환 제도 현황과 과제" 김경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
공동반환주병은 여러 제조사가 같은 규격의 병을 공유해 회수 후 재충전하는 방식이다. 반면 비공동반환주병은 특정 브랜드만 사용하는 전용병이다.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 투명병이나 일부 브랜드 전용병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주류업계는 브랜드 차별화와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이유로 전용병 사용을 늘려왔지만, 환경계에서는 이러한 병들이 재사용 체계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소주 출고량 가운데 비공동반환주병 비중은 2018년 0.7%에서 2022년 16.2%로 약 23배 증가했다. 반면 재사용 횟수는 2.9~3.5회로 공동반환주병(8.2회)의 절반 이하 수준에 그쳤다.
또한 선별과 보관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소매점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비공동반환주병 확대가 "재사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회용화가 진행되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EU PPWR, 8월부터 적용 시작
이 같은 논의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EU의 PPWR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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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국내 음료용기 자원순환 제도 현황과 과제" 김경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
PPWR은 2025년 2월 발효됐으며 오는 8월 12일부터 일반 적용이 시작된다. 다만 일각에서 알려진 것처럼 올해부터 재사용 비율 40%가 즉시 의무화되는 것은 아니다.
재사용 목표와 각종 세부 의무는 2030년과 2040년을 목표로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그러나 8월부터는 EU의 포장재 정책이 공식적으로 '재활용 중심'에서 '재사용 우선' 체계로 전환되는 상징적 전환점이 된다.
토론회 자료는 PPWR의 핵심 원칙을 예방(Prevention),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의 순서로 제시하며, EU가 재사용을 순환경제의 핵심 정책으로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EU는 2029년까지 회원국 전체에 보증금반환제도(DRS)를 의무화하고, 음료 분야 재사용 포장재 목표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환경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무역규범"
전문가들은 PPWR를 단순한 환경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무역규범으로 보고 있다.
과거 화학물질 규제(REACH)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앞으로는 포장재의 재사용성과 순환성이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음료·주류·생수업계는 유럽 수출 여부와 관계없이 글로벌 시장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김 조사관은 "EU는 기업 자율이 아니라 규제 의무로 전환했다"며 "한국도 재사용을 선택이 아니라 기준으로 삼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활용을 넘어 재사용으로
이날 토론회에서는 ▲빈용기보증금제도 의무화 ▲비공동반환주병 단계적 축소 ▲공동반환주병 확대 ▲자동반환기(RVM) 보급 ▲국가 재사용 목표제 도입 ▲EPR 제도 개편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재활용률이 아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빈병 회수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재사용 가능한 병은 시장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오는 8월 EU가 PPWR를 본격 적용하면서 재사용 중심의 순환경제 체계를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 역시 재활용 중심 정책에 머물 것인지, 재사용 중심으로 전환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