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 시행을 계기로 국내 폐기물 정책이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매립이 제한되자 상당수 지자체는 소각 확대를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으며, 서울시 역시 대규모 광역 자원회수시설 신설을 추진하며 처리 역량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지속가능한 해법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열린 ‘소각장 없는 도시로 제로웨이스트 도시를 위한 분산형 정책 토론회’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특히 인도 케랄라를 직접 다녀온 현장 방문기가 공유되며, 기존 논의와는 결이 다른 문제의식을 던졌다.
이번 토론회는 케랄라를 직접 방문한 활동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에서 실제 작동 중인 분산형 제로웨이스트 시스템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제로웨이스트나 폐기물 정책 논의는 주로 유럽 등 선진국 사례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지만, 케랄라는 우리와 유사한 도시 규모 속에서 정책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 참고 모델로 주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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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회 자료집 중 「인도 케랄라주, 분산형 사례 발표」(박정음 자원순환활동가 수리상점 곰손)에서 발췌 |
현장에서 전해진 내용은 기존 인식과는 다른 지점을 보여준다. 케랄라주는 의류 폐기물 처리시설은 운영하고 있지만, 일반 생활폐기물을 대량으로 처리하는 소각장은 두지 않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대신 가정과 지역 단위에서 폐기물을 처리하고 순환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 같은 체계는 2011년 매립지와 소각시설 건설을 둘러싼 갈등에서 출발했다. 당시 행정은 대규모 처리시설을 해법으로 제시했지만, 시민사회는 폐기물 관리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 결과 도입된 것이 ‘분산형 자원순환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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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회 자료집 중 「인도 케랄라주, 분산형 사례 발표」(박정음 자원순환활동가 수리상점 곰손)에서 발췌 |
케랄라 모델의 핵심은 ‘발생지 처리’다. 유기성 폐기물은 가정용 퇴비화 장치나 소규모 바이오가스 시설을 통해 처리되고, 커뮤니티 단위에서도 공동 처리 시설이 운영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상당량의 유기물이 가정 내에서 해결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비유기성 폐기물은 여성 중심 조직이 가정을 방문해 직접 수거하고, 분리 상태를 확인한 뒤 재활용 자원으로 판매한다. 여기에 주정부 산하 공공기업이 최종 판로와 유해 폐기물 관리를 담당하며 시스템 전반을 통제한다. 처리 중심이 아니라 ‘감량과 순환’ 중심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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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회 자료집 중 「인도 케랄라주, 분산형 사례 발표」(박정음 자원순환활동가 수리상점 곰손)에서 발췌 |
그러나 이러한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도 분명하다. 케랄라는 유기물 비중이 높은 반면, 한국은 포장재와 플라스틱 중심의 폐기물 구조를 갖고 있다. 저층 주거 중심의 공간 구조와 달리 한국은 고층 아파트 밀집 환경이어서 가정 단위 처리 방식 도입에도 제약이 따른다. 공동체 기반 참여 문화 역시 차이가 크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현실적 간극을 중심으로 발제자와 토론자, 참석자 간 논의가 이어졌다. 케랄라 사례의 적용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짚으며, 단순한 해외 사례 소개를 넘어 한국형 대안 모색으로 논의가 확장됐다.
전문가들은 케랄라 사례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방향’에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 정책이 매립에서 소각으로의 전환에 머물러 있다면, 케랄라는 폐기물 발생 자체를 줄이고 지역 단위에서 순환시키는 구조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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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회 자료집 중 「인도 케랄라주, 분산형 사례 발표」(박정음 자원순환활동가 수리상점 곰손)에서 발췌 |
이에 따라 토론회에서는 동 단위 자원회수 거점 구축, IT 기반 배출 관리 시스템, 보증금제 확대와 같은 ‘스마트 분산형’ 전략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시민 참여를 의무가 아닌 인센티브 기반으로 전환하고, 폐기물 관리 영역을 지역 일자리와 연결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됐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폐기물을 ‘어디서 처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줄일 것인가’로 정책의 중심을 옮길 수 있느냐다.
소각장 입지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는 지금, 케랄라의 사례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폐기물 문제는 더 이상 처리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운영 방식과 시민 참여 구조를 포함한 정책 설계의 문제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