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 앞, 재활용 분리수거 날이면 늘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투명 페트병은 라벨을 떼고, 플라스틱 뚜껑은 따로 모아야 한다. 종이는 스티커를 떼어내야 하고, 음식물이 묻은 용기는 씻어야 한다. 성실하게 분리배출을 하고 나면 뿌듯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다. 이 고생 끝에 과연 지구가 나아지고 있는 걸까?
최근 들은 한 환경 강연에서 해답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강연자는 “소비자는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쓰레기를 ‘잘 버릴 권리’가 아니라, 아예 ‘안 만들 권리’라니. 생각해 보니 마트에서 장을 볼 때부터 이미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 비닐 포장이 겹겹이 둘러싸인 채소, 일회용 플라스틱에 담긴 세제, 수리하기보다 새로 사는 게 더 싼 가전제품. 우리는 쓰레기를 줄이고 싶어도 줄일 수 없는 구조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분리배출을 아무리 철저히 해도 한계가 있다. 오히려 중요한 건 애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시스템이다. 독일의 보증금제도처럼 빈 병을 반납하면 돈을 돌려받는 방식, 고쳐 쓰는 문화를 장려하는 제도, 포장재를 줄인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유통 환경. 이런 변화가 있어야만 우리의 분리배출 전쟁도 끝날 수 있다.
쓰레기 문제는 거대한 기후위기와 연결돼 있다. 하지만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장바구니에 담는 제품이 포장을 얼마나 줄였는지, 고쳐 쓸 수 있는 물건인지, 다시 회수될 수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 그 작은 선택이 모이면, 언젠가는 ‘쓰레기를 안 만들 권리’가 당연한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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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자원순환센터에서는 다양한 전시와 강연들이 열리고 있다. 주민들과 일상에서의 쓰레기 줄이기 거점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