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순직 사건의 외압 및 은폐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돼온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현 국방대학교 총장)이 8일 오전 이명현 특별검사팀에 공개 소환됐다. 해병대 예비역들은 그의 출석 현장을 찾아 “진실을 말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사 개시 한 달째를 맞은 특검 수사가 핵심 고리들을 본격적으로 좁혀가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오전 9시 20분, 정장을 입은 임 전 비서관이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이은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침묵을 유지하다, “한 말씀만 부탁드린다”는 요청에 “수사기관에서…”라고 짧게 답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격노 진술 여부, 사건기록 회수 지시 관련 질의엔 끝내 말을 아꼈다.
그러나 임 전 비서관을 맞이한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은 조용히 있지 않았다. 피켓을 든 이들은 “임기훈은 진실을 말하라”, “국군 명예를 훼손하지 마라”며 그의 입장을 압박했다. 출입문까지 따라가 외쳤지만, 임 전 비서관은 묵묵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윤 대통령 격노 봤다”…비공개 진술 이후 첫 공개 소환
임 전 비서관은 지난달 25일 비공개 조사를 통해 윤 전 대통령이 격노하며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을 질책하는 장면을 직접 봤다고 진술했다. 또, 해병대 수사단이 채상병 순직 사건 기록을 경찰에 이첩한 당일, 윤 전 대통령이 개인 휴대전화로 직접 연락해 관련 내용을 질책했다는 진술도 특검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번 소환조사를 통해 격노 직후 벌어진 수사기록 회수 지시, 국방부 입장문 발표, 언론 브리핑 취소 과정 등에 임 전 비서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집중 조사 중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당시 상황보다 이후 일련의 과정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임 전 비서관의 개입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임 전 비서관은 사건 당시 이종섭 전 장관과 국방부, 대통령실을 연결하는 핵심 통로 역할을 맡았다. 특히 박진희 당시 군사보좌관(현 육군 56사단장)과 함께 사건 발생 이후 13일간 총 28회, 약 44분간 통화한 기록이 특검에 포착되기도 했다. 특검은 박 전 보좌관도 지난달 28일 소환해 조사한 바 있다.
■ 국방대 총장 된 임기훈…해병 예비역 “군인으로서 말하라”
임 전 비서관은 당시 육군 소장이었으며, 이후 중장으로 진급해 지난해 11월부터 국방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가 ‘사건 이후 승진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정성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현장을 찾은 해병 예비역들은 “국방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을 책임지는 총장이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대한 배신”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특검 사무실 앞에서 “해병대 정신은 거짓을 덮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군인의 책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갔다.
■ 특검, 수사 ‘허리’ 단계…‘격노→기록 회수’ 줄기 쫓는다
이명현 특검팀은 ‘VIP 격노설’ 실체를 규명하는 데 성공한 뒤, 이 격노가 어떻게 행정지시와 사건 왜곡으로 이어졌는지 본격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격노한 직후 사건 기록은 경찰로부터 회수됐고, 이후 임성근 전 1사단장은 혐의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임 전 비서관은 그 연결고리의 중심에 서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사용하던 ‘비화폰’을 통해 관련 지시가 오간 정황, 국방부 입장 변화 과정의 배후, 구명 로비와의 연결 가능성 등 수사 포인트는 많다. 특검은 확보한 통신내역과 압수물 분석을 끝낸 뒤 임 전 비서관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종섭 전 장관, 윤 전 대통령 소환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해병대 예비역들의 외침은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다. 군이라는 조직의 명예, 생명을 잃은 청년 장병의 진실, 그리고 권력에 의해 왜곡된 정의를 되돌리려는 외침이다. 진실은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고, 외면해도 책임은 남는다. 특검 수사의 끝은 결국, 그 진실과 맞닿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