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잔재’라는 프레임, 서울의 나무를 흔들다
    • —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나무
    • 마포구청은 최근 ‘일제 잔재 청산’을 내세워 양버즘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의 나무’로 상징되는 소나무를 복원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과연 서울의 가로수에 소나무가 적합할까? 그리고 양버즘나무는 정말 일제의 잔재일까?

      서울의 가로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소나무는 왕의 능행로와 국가 의례로 쓰인 상징적 수종이었다. 정조가 화성으로 행차할 때 연도에 심은 소나무는 권위와 질서를 표현했다. 그러나 당시의 ‘가로수’는 행렬의 길목을 장식하는 표식이자 제의의 일부였다. 오늘날처럼 매연, 폭염, 미세먼지에 노출된 도시 공간에서 생태적 역할을 수행하는 수목과는 다르다.

      현대적 의미의 가로수는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다. 경성부는 1930년대 ‘6개년 식수계획’을 세워 도시 미관과 그늘 확보를 목표로 가로수를 조성했다. 그때 가장 많이 심은 수종이 바로 양버즘나무(Platanus × hispanica), 즉 플라타너스였다. 오해가 많지만, 이는 일본의 상징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의 상징이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베를린의 운터덴린덴, 런던의 테임즈 강변—유럽의 대도시는 모두 이 플라타너스로 둘러싸여 있다. 오염에 강하고 가지치기가 용이하며, 여름엔 그늘을 넓게 드리운다. 도시형 가로수로서의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나무다.

      반면 소나무는 산림에는 어울리지만 도시 환경엔 취약하다. 도심의 매연, 제설제, 토양 압착 등은 소나무의 수분 흡수를 막아 고사율을 높인다. 뿌리가 깊지 않아 보도 블록을 밀어올리고, 시각적으로도 가로경관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조선의 정원과 왕릉의 소나무는 아름답지만, 신호등과 전선이 얽힌 서울 한복판의 소나무는 다르다.

      양버즘나무는 일제가 남긴 흔적이 아니라 도시 근대화의 산물이다. 산업화와 함께 도심의 온도를 낮추고 시민의 보행 공간을 품어온 나무다. 프랑스 파리가 그랬듯, 서울 역시 이 나무 아래서 시민들이 그늘을 공유해왔다.

      진짜 문제는 수종이 아니라 관리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제때 가지치기와 토양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병충해와 고사로 이어진다. “소나무냐 양버즘나무냐”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의 생태, 미관, 안전, 유지관리 체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과학의 문제다.

      서울의 거리에서 중요한 건 ‘어떤 나무를 베느냐’가 아니라, ‘어떤 도시를 만들고 싶으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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