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의원 개인의 역량 뿐 아니라 국민의 요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어떤 법안은 오랜 논의 끝에 통과되지만, 어떤 법안은 절실한 필요성이 제기되고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그렇다면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회의원이 아닌 시민이 법안을 준비하고, 의원실을 찾아다니고,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법제화를 호소한다면 그 노력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최근 한 시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몇 년 전 공군의 한 부대에서 군용 트럭에 탑승한 군인들이 안전띠를 매지 않아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당한 군인들은 인원 초과 탑승으로 맬 수 있는 안전띠가 없었던 것이다. 막 대학에 들어간 뒤 입대한 청년들이었다. 당시 입시 커뮤니티에서는 건너건너 아는 아이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분노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군용차량에 탑승하는 병사들의 안전 문제를 바꾸기 위해 나선 시민이 있었다.
그녀의 자녀는 이미 군 복무를 마쳤다. 당장 자신의 자녀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 문제를 끝까지 붙들었다. 군용차량의 안전띠 착용 의무화를 비롯해 병사들의 안전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법제화를 요구했다.
그 과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입법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 여러 층을 오르내리며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찾아다녔다. 법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호소문을 전달하고, 의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우편으로 보낸 호소문이 다른 문서에 묻혀 읽히지 않았던 경험을 한 뒤에는 의원실마다 호두과자와 호소문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한 번으로 끝내지 않았다. 다시 연락하고, 다시 설명하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녀가 공개한 자신의 활동 기록에 따르면, 법제화를 위해 들인 시간은 16개월에 이르렀고 개인적으로 부담한 비용은 약 2,700만 원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법을 바꾸려는 시민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의원실 보좌진들에게 반복해서 들은 말 가운데 하나는 이메일을 계속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전화로 의견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담당자가 내용을 잊거나 다른 업무에 밀려 놓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메일은 기록으로 남고, 여러 보좌진이 내용을 공유해 검토할 수 있으며, 반복적으로 접수되는 민원은 의원에게 보고할 사안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물론 이메일을 많이 보낸다고 법안이 반드시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반복된 민원이 실제로 어느 정도 의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 다만 이 경험은 시민의 요구가 입법 과정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현실적인 문턱을 만나는지 보여준다.
시민은 법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국회의원의 책상에 도달하고, 검토되고, 다른 입법 과제와 함께 논의되기까지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하다.
법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 필요성이 정치적 의제로 다뤄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그녀가 전한 설명에 따르면, 군인 안전띠 착용 의무화와 관련해 국방위원회에 회부된 3개 법안은 2026년 5월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오랜 시간 이어진 호소가 입법 성과로 연결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를 한 시민의 끈기만으로 설명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의원들의 입법 활동과 상임위원회 심사, 법률안의 검토와 의결 등 제도적인 절차가 작동해야 한다. 시민의 노력은 그 절차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다뤄야 할 문제를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활동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그래서 더 크다. 왜 시민은 자신이 직접 해결할 문제가 아닌데도 사비와 시간을 감당해야 했을까. 시민의 요구가 충분히 검토되고 있는지, 입법기관이 먼저 살펴야 할 안전 문제를 시민이 직접 찾아내고 설득해야 하는 구조는 적절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13일 마무리된 마포의 주민자치교육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만났다.
(사)시민과함께하는 메가시티연구소가 진행한 네 차례의 교육에서 참가자들은 지방자치법 개정 내용과 행정안전부가 제시한 주민자치회 참고조례를 살펴봤다. 기존 조항에서 미흡한 부분은 무엇인지, 주민의 권한과 행정의 역할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보완해야 하는지 논의했다. 마지막 시간에는 그동안의 검토를 바탕으로 직접 조례안을 만들어 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활동은 주민발안의 형태로 마포구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에서 정한 요건에 따라 주민들의 서명을 모아야 한다. 마포구에서 필요한 서명 수는 약 4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민자치에 관한 교육이라고 해서 단순히 주민자치의 의미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법률과 조례를 읽고, 행정안전부의 참고조례를 검토하고, 부족한 조항을 찾아 대안을 작성해 보았다. 이후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고 서명을 모아 의회에 제출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제도를 이용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주민에게 필요한 제도가 무엇인지 직접 고민하고 문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주민자치회 조례를 주민발안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의 다른 자치구에서도 주민 서명을 모으는 과정까지 진행했지만 조례안이 채택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민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대안을 마련해도 그것이 곧바로 제도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왜 이런 수고를 감수할까.
주민자치회가 어떤 권한을 갖고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주민의 참여 범위와 직결된다. 행정기관이 정한 기준을 따르는 것과 주민 스스로 기준을 검토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조례를 한 조항씩 읽고 토론하는 과정은 주민자치가 무엇인지 배우는 일이면서, 실제로 자치의 주체가 되는 경험이기도 하다.
군부대 안전띠 착용 의무화를 위해 국회 문을 두드린 시민과 주민자치회 조례를 직접 만들려는 마포의 주민들.
두 사례는 서로 다른 문제를 다루지만 공통점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의 범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발견해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노력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한쪽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했고, 다른 한쪽은 법률을 공부하고 조례를 검토하며 주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노력한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움직인다. 누군가는 군 복무 중인 청년들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는 주민이 지역의 주인이 되는 자치를 위해 자신의 몫을 감당한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제도이지만, 시민의 역할이 투표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대표자에게 권한을 맡겼다면 그 권한이 제대로 행사되는지 살피고, 필요한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 때는 직접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시민이 법과 조례를 공부하고 대안을 만드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 제도가 시민의 요구에 응답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물론 시민에게 입법기관의 책임을 대신 지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모든 시민이 수천만 원을 들이고 국회 의원실을 찾아다녀야만 자신의 요구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시민의 열정과 희생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입법 참여를 보장할 수 없다. 시민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수렴하고, 검토 결과를 설명하며, 채택하지 못한 의견에도 이유를 밝히는 제도적 책임이 필요하다.
누가 법을 만드는가.
법률을 의결하는 것은 국회다. 그러나 어떤 법이 필요한지 발견하고, 그 필요성을 사회에 알리고, 입법기관이 움직이도록 요구하는 일은 시민도 할 수 있다. 시민은 법률을 직접 의결하지 못하더라도 법이 다뤄야 할 문제를 제기하고, 법과 조례의 대안을 만들며, 제도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법을 만드는 힘은 의회에 있다. 그러나 그 법이 왜 필요한지 묻고,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지 일깨우고, 제도가 움직일 때까지 요구하는 힘은 시민에게서 시작된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요구하고, 의회가 응답하며, 그 결과에 대해 다시 시민에게 설명하는 과정 속에서 작동한다. 시민의 목소리가 법이 되기까지 필요한 것은 개인의 헌신만이 아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검토하고 응답하는 제도의 책임이다.